7달 전 챕터 원. 태섭대만 처음 만났을 때 걔는, 가게 문 앞에 쭈그려 앉아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툭 튀어나온 무릎 위에 쭉 뻗은 팔을 걸친 채, 손가락 사이에는 담배 하나를 끼우고 있었다. 불을 붙이지 않은 새 담배였다. 옷은 말끔했으나 그렇지 않은 얼굴에는 커다란 밴드가 붙어 있었다. 눈썹이나 눈빛을 보아하니, 누구랑 싸움이 붙어 그러려니 했다. 대만은 걔를, 빤히 쳐다보았다.... 8
10달 전 삿포로에 갈까요 태섭대만 1. 네가 말한다. 삿포로에 갈까요? 대답을 바라고 하는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저 말을 할 때 너는 나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 곳을 바라보면서 말한 너는 눈도 깜빡이지 않는다. 네가 그러는 동안 나는, 너를 쳐다본다. 아주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그 곳을 바라보는 너는 편안한 풍경인 것 같았고 동시에, 금방이라도 스쳐 지나갈 바깥 풍경인 것... 9
일 년 전 I'M YOURS 태섭대만 송태섭. 우리 술 마시자. 어제 들은 말이다. 자기 전, 늘 하는 전화 통화로. 그런데도 선명하다. 대만의 자취방이 있는 그곳으로 가는 지하철 소리보다. 문에 비스듬하게 기대선 태섭은 금세 사라지는 풍경을 쳐다본다. 어둡지만,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 정도로 익숙한 길이다. 대만이 20살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 큰 도시로 가고 난 뒤 가끔... 12
일 년 전 멀리 있을지라도 태섭대만 태섭이 막 운전을 시작했을 때, 대만은 가끔씩 태섭에게서 사진을 받았다. 어디인지는 알 수 없는 도로에 세워둔 차와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 초보였을 때도 몇 년은 운전한 베테랑 운전자 같은 표정을 지었는데, 능숙하게 운전을 하게 된 지금도 똑같았다. 참 변함없는 녀석이었다. 대부분 셀카였지만, 가끔 거치대에 올려놓고 찍은 듯한 사진을 보냈다. 오늘 보낸 사... 13
일 년 전 영원하지 않더라도, 04 태섭대만 4. 말로 할 수 없는 사랑도 있지만 미간이 구겨졌다가, 펴졌다가, 도르륵 굴러가는 눈이 오른쪽을 봤다가, 왼쪽을 봤다가, 손가락을 펼친 손으로 허리를 짚었다가, 뒷덜미를 잡았다가. 대만이 바르작 거리는 동안, 태섭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가슴에 올린 손은 더 이상 대만이 보지 않아도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태섭이 그 손을 내릴 때까지, 대만은 대답하지 않...
일 년 전 영원하지 않더라도, 03 태섭대만 3. MY MOOD IS YOU 두 사람은 대만이 먼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 태섭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만큼은 시간이 빠른 것 같았다. 손바닥 전체가 따뜻했다. 이 온기는, 대만의 집에 도착한 뒤에 나누었던 악수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오랜만이라는 인사 뒤에 숨겼던 보고 싶었다는 말도. 하지 못한 말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
일 년 전 영원하지 않더라도, 02 태섭대만 2. 있잖아, 정말 그걸로 괜찮은 거야?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은 각자의 방 앞에서 가만히 선채로 마주쳤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쳐다보기만 했다. 잘잤냐거나, 자는데 불편한 건 없었냐거나, 잠과 뒤바꾸고 아침에 마주치면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인사들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 어젯밤, 잘자라는 인사를 먼저 건넨 대만조차도. 이 조용함은 태섭이 오기 전과 다를 ...
일 년 전 영원하지 않더라도, 01 태섭대만 1. 사랑이 뭔지 라던가 말할리가 없지만 “고생하셨습니다.” “어어. 들어가.” “네. 연락 드릴게요.” 대만은 달재를 태운 택시가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길게 숨을 내쉬며 호흡을 정리했다. 어쩐지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다. 이 느낌이, 물끄러미 서서 손바닥을 쳐다보도록 만들었다. 그나마 덜 취한 달재와 술에 취한 녀석들을 먼저 보내느라 힘을 좀 쓴 모양이었다.... 1
일 년 전 영원하지 않더라도, 00 태섭대만 “진지한 연애는 도움이 안 된다.” 팀 메이트인 잭의 SNS를 훑어 보던 태섭은 사진으로만 존재해야 할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눈썹을 치켜 들며 고개를 들었다. 잭은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SNS 사진과 다를바 없이 깐족거리며 웃고 있는(주관적 태섭 시점) 잭의 면상과 마주치자마자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잭은 못 볼 꼴을 봤다는 듯이 얼굴을... 2
일 년 전 평행우주 태서바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한다. 전화가 걸려 온 건 오후 3시. 애리조나에서 태양이 가장 뜨겁게 내리쬐는 시간. 태양 빛으로 뜨거워지는 건 대지일 뿐이지 내 마음은 아닌데. 전화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여보세요? 야, 송태섭. 목소리가 생생해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건지 모두 잊어버렸다. “지금 새벽 아니에요?” -그렇지. “왜 이렇게 빨리 일어났어요?” -글쎄. 태...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