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작

문서 7개

한여름 끝자락의 꿈

그 날은 유난히 더웠다. 여름이면 너는 꼭 수박을 먹었다. 수박을 잘 먹는 아이였다. 제 머리보다 크게 자른 수박 한 조각을 한입 가득 베어 물고는 오물거리는 모습이 꼭 밥을 먹는 아기 새 같았다. 너는 항상 뭔가를 먹는 걸 좋아했고, 나는 그걸 지켜보았다. 내가 하지 않아도 네가 하면 그건 그저 보는 것만으로 흐뭇했다. 나는 좋았다. 네가 좋았다. 네가 ...

2026. 8. 8.

기계장치의 고향

그곳의 강은 멈추는 일 없이 영원히 흐르더랬다.

"구름으로 이루어진 강이 있대."​ 뜬금없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이번에도 에피가 바보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 "뭐? 구름으로 이루어진 강?"​ "응, 진짜 낭만적이지 않아? 난 언젠가 거기서 수영해 보고 싶어."​ 대체 어느 헛소리를 하는가 싶어 계속 듣자니, 평소에 하던 것과 같은 어김없는 헛소리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 에피는 내가 한숨을 ...

2026. 7. 2.

함께 비 맞을 낭만

치킨, 동백꽃, 다리 이 세 단어만을 가지고 떠오르는 내용을 그대로 써 보았습니다. 퇴고 없음.

“우리 치킨 쏘기 내기 할래?” 선화가 생글생글 웃으며 턱을 괴곤 나를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 후, 애써 내가 느끼는 긴장감을 숨기려 일부러 조금 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무슨 내기. 선화는 잠시 아무 말도 없다가 내가 다시 다른 말을 생각해 낼 때쯤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왜 있잖아, 우리 학교에 도는 괴담 하나.” 비 오는 ...

2026. 8. 8.

메모리 카르텔

카르텔, 재미, 사람 이 세 가지 단어를 듣고 바로 떠오르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퇴고 없음.

친애하는 나의 친구여. 당신을 만나지 못한 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벌써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는 두 번의 겨울을 더 맞이했습니다. 겨울은 언제나 춥고 고독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사라진 이후로 마주하는 겨울은 손발이 아니라 기억이 시리더군요. 나는 당신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안부를 들은 후로 어떻게 살아가는 줄도 모릅니다....

2026. 8. 8.

부재(不在)의 부제(副題)

풍등, 첫날, 무기력 이 세 가지 단어로 글을 써 보았습니다. 퇴고 없음.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운데에 불꽃을 하나 품은 채 아득히 먼 하늘 위로 제가 가진 작은 불씨 하나의 힘만을 의지한 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바람은 불지 않았다. 그러나 불씨는 언제 꺼질 지 몰랐다. 이런 생각을 하며 올려다 보면 그 무엇보다도 불안정해 보이지만,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빛깔이 제 주변을 감싸고 있는 종이를 통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2026. 8. 8.

우린 버려진 이름이야

버려졌지만 함께 남겨졌어.

저는 개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종종 제가 개명하기 이전의 이름은, 그와 관련된 추억은, 기억은, 그 이름을 가졌을 때의 자아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고 생각합니다. 짐승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하죠. 저는 문득 제가 제 스스로의 이름을 싫어하게 되면 자신이 본인의 일부를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썼습...

2026. 8. 8.

서투른 어른

이상하리만치 어른스러운 아이

어른들은 거짓말하는 데 능숙하지 못해요. 문득 아이가 운을 떼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이야기인고 하며 귀를 기울이다가 이후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으니, 그 이야기가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 결국 먼저 묻고 말았다. 아이는 덤덤하게 답할 뿐이었다. 사람이 죽었을 때에는 그 사람이 멀리 여행을 갔다고 하곤 해요. 아주 멀리, 오랫동안, 우리가 갈 수 없는, 볼 ...

2026.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