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 전 떠난 이에게 그 시기 천형문에는 스승을 잃은 자가 무수히 많았다. 물론 꼭 같은 수의 제자들을, 사형제를, 문도를 잃은 자도 무수했다. 당연하게도 무연이 끝나고 천형문으로 복귀한 설란의 스승도 돌아오지 못했는데 사실 설란은 스승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게 잘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스승의 방은 비었고 그 방이 그 익숙한 목소리로 다시...
3달 전 탐색하다가 미끄러지는 이야기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동굴이라는 것은 그 내부가 미로와 같아도 길과 흐름이 있다는 뜻이 되었다. 그것을 생각하고서 설란은 떠도는 혈괴들이 어떤 흐름으로 오가는지를 파악하려고 했는데, 어쨌든 그러려면 이 안을 돌아다녀야 했으므로 이 시리고 어두운 동굴 안을 걷게 되었다. 이곳은 그림자가 잘 분간되지 않았다. 어두운 탓도 있었으나 온통 얼음이라 사람을 잘 비추어...
3달 전 나무도 미끼가 된다 나무로 버섯을 깎았더니 누가 어찌하여 버섯을 깎았느냐고 물어, 설란은 이것으로 동족을 위장, 버섯 군락을 유인해 잔뜩 버섯을 캐고자 함이라고 답했다. 헛소리다. 버섯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만일 버섯이 짐승과도 같아 스스로 걸어다녔더라면 이 나무로 깎은 버섯을 대략 서른 개쯤 만들어 나누어주었을지도 모른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한 번 눈여겨 봐둔 것...
3달 전 식량 구하기 이런 날씨, 이런 계절에 찾는 먹을 것이란 거기서 거기였다. 거친 토양과 혹독한 날씨 속에서 시들어가는 나물을 캐거나, 이런 곳에서도 어찌저찌 자라 고목이나 바위 틈에 붙어 있는 버섯을 캐거나, 이런 계절에 용감하게도 돌아다니다 운 나쁘게 사람 눈에 띈 짐승을 사냥하거나, 어쩌다 날짐승 따위에게 먹히지 않고 남아 탐스러운 과육을 자랑하는 나무열매를 따거나....
3달 전 수색 혈괴가 가득 모인 창고를 발견하거든……. 역시 잡아 죽여야겠지. 혈마가 제 몸을 숨긴 곳을 발견하거든……. 역시 잡아 죽여야겠지. 이 지극히 타당한 살의로 얼룩진 사고는 어쩌면 그들이 이미 산 자로부터 아득히 멀어진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인으로 난 자가 살인을 해본 적 없느냐고 하면 그것은 또 아닐 터. 협객으로 나 일평생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3달 전 얼음과 눈을 타넘고 5년 전에도 폐허를 거닐었다. 아니, 거닐었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헤매고 헤집고 뒤엎고 다녔다. 빙열로 바다가 드러날 정도로 땅이 갈라진 곳에 몇몇은 정말로 빠져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낚시대를 드리워 걸리는 물고기를 보거든 그 안에 너도 우리의 형제를 보았느냐 묻는 날이 있었고 당연하게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구성원 대부분이 추위에 익숙한 사람들...
3달 전 버섯 따기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반쯤 더 바뀔 정도의 시간을 거슬러 가면 많이 굶주리던 시절에 다다른다. 한날은 버섯을 캤는데 다소 머리 굵은 아이가 그건 먹으면 골로 가는 것이라며 낚아채 가져간 일이 있었다. 당시에는 무엇이 독버섯이고 무엇이 먹을 수 있는 버섯인지 알지 못했으므로 운이 좋았다. 마치 그때처럼 땅을 샅샅이 뒤져 버섯을 찾아낸다. 당장에 따지 않고 ...
3달 전 한 걸음 대국은 끝났다. 끝난 지 오래다. 설란이 굳이 상대의 틈을 포착하여 붙잡아 벌리는 일을 하지 않았고 아마 상대도 마냥 완벽한 사람보다는 어떤 손윗형제의 형태를 표방하여 대해주었으니 이것은 대국보다는 소꿉놀이다. 그러나 15년 전과 15년 후의 두 사람은 어딘가 여전하여 전진하기 위해서는 결국 수를 두어야 했다. 이것이 설란이 끝난 판 위에 돌을 내려둔 이유...
3달 전 발이 시려울 때 유용한 방법 알려드립니다 집합이 끝나 이동을 시작한 토벌대라는 것은 막 겨울잠을 자고 나온 곰의 움직임과도 닮아 있었다. 커다랬고 굼떴고 소란스러웠다. 빙원 안쪽으로 갈수록 척박하고 추운 환경이 이어졌으므로 그를 대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무인도 동상 따위를 막는 게 쉬운 건 아니니까. 그리하여 설란은 여분의 피풍의 같은 것이 잘 정리되어 날라지는 것을 보면서 무언가를 꺼내...
2달 전 사명감 부재 숲이 아니라 나무를 보는 삶을 살고 있다. 장기적인 목표, 계획, 세상을 위한 대의 따위는 부재한다. 단지 눈앞에, 또 손 안에 해치울 것이 들어오면 그것을 잡아 치우고 부러뜨리고 으깨며 불태우고……. 그리고 다음 것을 집어서 마찬가지로 행한다. 그런데 숲을 보고 벌목의 판을 짜지 않았는데도 하나하나 베어간 나무가 무수히 쌓이니 이제는 눈앞에 당도한 나무도...
3달 전 화살이 바람을 가르면 과녘은 있지도 않은데 바람. 두 후기지수가 나란히 서서 대화를 나누던 내내 잠잠하던 것이 분다. 흩날리는 제 땋은 꼬랑지의 움직임을 가늠하면서, 설란은 새삼 눈앞의 상강이 바람의 자손임을 생각했다. 무릇 바람이란 손으로 붙잡을 수도 없고 자루 안에 가둬놓을 수도 없어서 그저 그것이 사람 하나를 휘감고 지나가거나 저 멀리 떠나는 순간에 마주쳐야만 닿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닿...
3달 전 백일몽 들려오는 풍문만큼이나 사방이 흉흉한 요즘이었다. 그러나 무연은 끝나지 않은 데다 사람들 저마다 이곳에 모인 목적이 있었으므로 여전히 거리는 소란스러웠다. 오늘은 오랜만에 거리를 도는 참이었다. 그간 약초를 캔답시고 줄곧 산을 헤집고 다녔던 터라 대회장 주변이든 유희장 주변이든 어쩌다 간식을 사먹는 일이 아니면 돌아다니지를 않았다. 그래도 상황을 아주 모르는...
3달 전 문득! 사람이 하나 죽어도 무연은 멈추지 않는다. 천옥무연이 어느덧 본선 비무를 맞이하였으나 관중들에 비해 참여하는 후기지수들의 표정은 순간 심란하였는데, 역시 같은 또래의 무인이 끔찍하게 살해를 당한 탓이겠다. 그러나 이 강호, 특히 무인들 사이에서 사람 죽는 일이야 무연을 멈출 정도의 사건은 되지 못했다. 결국에 왁자하게 웃고 지껄이며 먹고 마시는 사람들의 환...
3달 전 잘 지내시는지요? 맑은 하늘 아래로 웅성거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시야 아래로 거진 반죽음이 되어 질질 끌려가는 불량배가 있었다. 잘 잡혔다면서, 또는 잘 퇴치되었다면서 소근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설란은 마찬가지로 불량배를 지켜보다가 걸음을 돌렸다. 무언가 이상했다. 뒤늦게 도착하여 손을 거들지는 못했으나, 저 불량한 무인이 덤벼들다가 고꾸라지기 전의 모습은 확실히 보았...
3달 전 生 징이 울렸다. 함성 또한 울렸겠으나 징 소리 하나만 간신히 붙잡은 귀는 먹먹해서 영 들리는 게 없었다. 가물거리는 시야로 사위를 둘러보면……. 역시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눈을 두세 번쯤 깜빡이고 나서야 저 멀리 박수를 치는 관중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러니까 설란은 누가 저처럼 본선에 진출했는지, 누가 탈락했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아니, 내가...
4달 전 맞혔는가? 대련을 시작하자마자 있는 힘을 다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얼마 해보지 않았지만 설란은 이 어린 무인들간의 대련에서 우선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체득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요령이었다. 그러나 이런 요령을 저 혼자만 알고 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어쩌면 상대에게는 그것이 요령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고. “……어찌, 저희 둘 모두 이런 선택...
4달 전 정말 제대로 하고 있느냐? 저의 성취를 궁금해하시는 듯하니, 이 설란, 다시 한번 저의 행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축제와 예선을 앞둔 탓인지 천부옥토의 대회장 주변은 참으로 북적거렸더랬지요. 당연하게도 각종 사건사고도 많이 벌어져, 무인으로서 저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작게는 고양이를 잃어버린 아이를 도와 그 행방을 찾아주는 일이나 누군가의 짐을 날라주는 일에서부터, 크게...
4달 전 제대로 하고 있느냐? 예, 인정합니다. 설란, 조금 느슨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아니오’라고 하지 않는지 물어보시겠지요. 하니 지금부터 제가 어찌 지내었는지 풀어보겠나이다. 금전이라는 것은 퍽 금방 사라졌다. 이렇게 사람이 많고 북적이는 곳에 나다니는 것이 잦지 않은 만큼 들떴던 탓이 크겠다. 설란은 돌림판 세 번으로 사라진 삼백 전을 아쉽게 곱씹다가 얌전히 천형문 ...
4달 전 곧은 길 새로운 땅은 낯설고 좋았다. 설란은 지나가는 사람의 면면부터 시작해 하늘, 땅, 나무, 건물, 그 밖의 모든 것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마냥 구경하는 동안에는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두 잊혔다. 그러나 모든 상념이 영원할 수는 없었으므로 그는 곧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제 뒤에 일렬로 선 이들이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