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나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말은 안 할 뿐. 최정우는 얼굴 위로 올라가는 손을 무의식적으로 잡아챘다. 욕실에 들어오기 전부터 앞을 제대로 응시하지 못하는 눈 근처에 닿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단나비가 잡힌 자세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어쩐지 묘한 대치가 벌어졌다. 당황한 기색으로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건 정우였으므로 긴장감은 단 한 사람만의 것이기는 했다. 잡힌 사람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순순히 ...
궤도의 오류 그리고 당신은 늘 틀린 길을 바로잡아 주지 않았잖아. 아주 오래전부터 이 행성에 잘못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발을 땅에 딛고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서 세상의 중력 법칙이 나에게만 잘못 적용된 것 같았거든요. 다른 곳이었으면 어땠을까요? 지구보다 훨씬 무거운, 중력이 강하게 끌어당기는, 이를테면 목성 같은 곳. 그럼 단단히 붙어있는 두 발이 나에게도 당연했을 텐데……. ⊹ ⊹ ⊹ 해가 떠 있는 듯한 ...
[ 무영 ] 40세, 180cm/84kg [외관] 잘 짜인 단단한 골격, 다정하게 휘어질 줄 아는 눈매, 호의를 담아 당신을 호칭하는 입술이, ……분명 매력적인 이였다. 그는 삼십 대 중반에서 마흔을 막 넘긴 것 같이 보였고, 때에 따라 나이가 조금 헷갈리기도 했다. 날카로운 눈매가 둥글게 휘어지며 패이는 옅은 눈가 주름에선 유연한 관록이 느껴졌고 가끔씩 냉정하게 다물어진 입술에선 반항적인 냉소가...
서드 드라이버 이용 당한 F1 오후 일곱 시 반. 낯설지 않은 건물에 들어선다. 오래된 플랫에 엘리베이터를 기대해선 안 되므로, 쓸데없이 로비를 헤매는 일 없이 계단 위로 발을 올렸다. 아주 가볍고 빠른 움직임으로 두 칸씩 밟아 오르던 나비는 문득 고작 삼 층짜리 층계를 오르내리며 숨을 헐떡이던 집주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삼 층에 있는 집은 아직 주인이 도착하지 않아 비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