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손님 받아라! (1) [Playing…] 꼬—끼오!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눈이 번쩍 뜨였다. 아침 6시 정각. 하루의 시작이었다. 오늘이 며칠이더라. 침대에 널브러진 채로 고개만 돌려 벽에 걸린 달력을 살폈다. 여름 14일? 스타프루트 수확하는 날이네. 끝내주는 하품을 연발하며 침대에서 기어 나와 부엌으로 향했다.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냉장고를 뒤적...
2화 손님 받아라! (2) [Playing…] 잠시 망설이던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남자를 데리고 곧장 자본주의 농장 투어에 돌입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소개를 안 했네. 난 캐피야. 자본주의 농장의 주인이지.” “…쥬라큘 미호크다.” 멋있는 이름이네. 스타듀밸리에 이렇게 독특한 이름을 가진 NPC가 있던가…. 한 명 있군. M. 라스모디우스. 시스템상으로는 ‘마법사’라고 칭해...
3화 손님 받아라! (3) [Playing…] 숨겨서 무엇하랴. 지금은 어엿한 고인물인 나도 한때는 스린이 시절이 있었다. 계절 넘어가면 작물이 썩는 것도 몰라서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구매한 딸기 씨앗을 죄다 날리고, 어떤 작물이 효율이 높은지 몰라서 마구잡이로 심다가 헛고생하고, 스프링클러 없이 물뿌리개로 일일이 물을 주다 기력이 다해 탈진하던 시절이. 그런데 눈앞에 농사 뉴비가 있다? 이건 절...
4화 손님 받아라! (4) [Playing…] “양배추 농사라. 붉은 양배추는 키워본 적이 있긴 한데….” 양배추를 기르고 있지만 땅이 문제인지 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며 짧게 이야기를 마친 미호크가 커피로 목을 축였다. 우유보다는 커피 파구나. 메모 완료. 남겨진 이리듐별 우유가 섭섭하지 않게 한 모금 마셔주며 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일반 양배추랑 붉은 양배추… 큰 차이 없는데. 양배추 농사가 ...
5화 손님 받아라! (5) [Playing…] “그런고로 나 한동안 스타듀밸리에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도 소문내 줘. 놀러 가는 거 아니라 기념품은 없을 예정.” “…닭들 밥은 제대로 주고 가는 거지?” “당연하지. 디럭스 닭장이라 건초 자동으로 채워지거든.” 눈을 가늘게 뜨고 묻는 셰인에게 저장고에 쌓인 건초 개수까지 읊어주자 그제야 의심의 눈초리를 거둔다. 하여튼 닭 진짜 좋아한다니까. 내...
6화 손님 받아라! (6) [Playing…] 호언장담했으니 믿어 보자. 어차피 나는 항해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승객이었던 적은 있어도 선원이었던 적은 없다. 내가 배를 타본 건 현실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스타듀밸리에 오고 나서는 윌리의 배와 겨울 야시장 잠수함을 이용해 본 게 전부다. 그러니 이쪽 분야에서는 완벽한 문외한이라 할 수 있겠다. 어련히 잘하겠지, 라며 안일하...
7화 손님 받아라! (7) [Playing…] 하지만 감동한 것과는 별개로 썩은 양배추는 없애는 게 맞다. 내버려둬봤자 벌레나 꼬일걸.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토해내며 소리치는 원숭이를 뒤로하고 곡괭이를 휘둘렀다. 팍, 팍, 팍. 썩은 작물이 하나둘 사라진다. 그 모습에 원숭이들은 경악하여 덤벼들려 했으나 미호크의 싸늘한 시선을 받고 침몰했다. “어디 보자….” 휑해진 밭을 훑으니 멀쩡한...
8화 손님 받아라! (8) [Playing…] 신이 나 쏜살같이 달려간 나는 두 시간 만에 얌전해졌다. 힘없이 폐허를 거닐며 음울히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별로 볼 게 없잖아….” 아니, 어떻게 된 게 진저 섬보다 더 콘텐츠가 없을 수 있지? 행여 새로운 게 나올세라 이것저것 부수고 깨고 줍고 그랬는데 건진 건 어두운 흙 8개에 나무랑 돌 조금, 섬유 많이, 뼛조각 몇 개가 전부다. ...
9화 손님 받아라! (9) [Playing…] 일이 잘 해결되었으니 나는 슬슬 농장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방에 두고 온 짐을 챙겨오겠다며 슬쩍 자리를 비워 다른 길로 샌 것이다. 먼지투성이 고성의 유일한 장점: 빈방이 널리고 널렸다. 어제 성 내부를 헤매다 발견한 창고로 들어가 보관함과 뼈 제분기를 설치했다. 그리고선 조용히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근처에 미호크 없는 것 맞지? 좋아, 지금...
10화 네? 해적이요? (1) [Playing…] 오늘은 여름 23일 화요일. 오랜만에 칼리코 사막에 방문한 나는 해골 동굴에 입장하기 전에 먼저 가게 오아시스를 들렀다. “어머, 캐피?” “샌디 안녕~ 자, 이건 선물.” 막 꺾어 온 스위트피를 내밀었다. 버스 정류장 앞에 딱 한 송이 피어 있길래 샌디 주려고 냉큼 주워 온 아이템이었다. “계곡에서 난 꽃을 받다니! 사랑스러운 일...
11화 네? 해적이요? (2) [Playing…] 비를 맞으며 바위 위에 기대 있던 인어가 내게로 몸을 돌렸다. 우와, 나 인어랑 대화하는 건 처음인데. 야시장에서 매년 인어 쇼를 보긴 하지만, 공연이 끝나면 칼같이 퇴장하는 프로페셔널한 분들이라 제대로 말을 나눠본 적은 없었다. 1-5-4-2-3 버튼 눌러서 얻는 진주도 인어가 아니라 요정이 줬었고. 이번 기회에 인어랑 제대로 상호 교류를 할 수 ...
12화 네? 해적이요? (3) [Playing…] 딸랑, 종소리와 함께 길드에 들어가자, 카운터에 서 있는 말론이 눈인사를 건넸다. 나는 벽난로 앞 흔들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길에게 잠깐 시선을 던졌다가 말론에게 가 대뜸 본론을 토해냈다. “자네가 무장색 패기를 익혔다고?” “응. 그런데 어떻게 쓰는지 몰라.” 그러자 미심쩍은 눈으로 날 훑던 말론이 황당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
13화 네? 해적이요? (4) [Playing…] 날도 추운데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며 미호크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스타듀밸리를 방문한 미호크는 눈 내리는 하늘을 힐끔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여 초대에 응했다. 크큭, 계획대로. 양배추 네 포대와 함께 정말로 스타듀밸리를 찾아온 미호크를 위해 나는 상다리가 부러지게 잔칫상을 차렸다. 2명이 먹기엔 양이 좀 많긴 했지만,...
14화 네? 해적이요? (5) [Playing…] 다음 날 오전 6시. 큰 우유와 완벽한 아침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미호크가 출항 준비를 하는 틈을 타 농장을 빠르게 점검했다. 9시 정각에 목장 오픈런을 뛰어서 건초를 대량 구매하고, 나비 물그릇도 가득 채워 놓았다. 우리 나비는 내가 없어도 잘 사는 고양이지만 혹시 모르니까. 까먹은 거 없겠지? 마린룩을 싫어하는 듯한 미호크를 배려해 이번에는...
15화 네? 해적이요? (6) [Playing…] 내 질문에 미호크가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근처는 우리 흰 수염 해적단의 해역인데… 칠무해가 이런 외진 섬까지는 무슨 볼일이지요이?” “글쎄, 내가 알려줘야 할 이유가 있나?” 싸늘한 반문에 남자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절대 호의적인 눈빛은 아니라 절로 양심에 찔렸다. 사, 사유지 무단 침입은 범...
16화 네? 해적이요? (7) [Playing…] 스타듀밸리는 나름대로 과학과 마법이 공존하는 세계관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현대 판타지라고 할까. 당장 플레이어인 나부터가 대도시인 주주시티 출신이고, 게임의 주 배경이 한적한 시골 마을인 탓에 크게 부각되지는 않지만 인터넷 등의 현대 문물도 발달해있다. 마을 주민만 봐도 그렇다. 마루는 로봇을 직접 만들 수 있고, 세바스찬은 코딩이 본업인 개발자에,...
17화 네? 해적이요? (8) [Playing…]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다. 나는 성인이 맞아. 당장 증명할 수단은 없지만 그건 명백한 진실이었다. 내가 민증을 발급받은 게 몇 년 전인데. 아직 학식은 졸업 못 했지만 급식은 진작에 졸업한 지 오래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 현재 내 몸의 정확한 나이를 모른다는 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스타듀밸리’라는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나이는 그리 중요한 ...
18화 네? 해적이요? (9) [Playing…] 싸늘한 분위기를 환기하고 싶었는지 삿치는 헛기침하며 물었다. “크흠, 그런데 이 섬에는 어쩌다가 오게 된 거야?” “아는 사람이 이 섬으로 가는 보물 지도 한 장만 놓고 사라져 버려서 한 번 와봤어.” 해적한테 보물 지도 얘기를 꺼내도 되나? 싶긴 했지만 어차피 어둠어둠 열매를 본 해적들이 꽤 돼서 그냥 속 시원하게 털어놓았다. 처음부터 동행...
19화 네? 해적이요? (10) [Playing…] 가만 보면 이 양반도 은근히 다혈질이라니까. 일부러 자극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 넘어가면 어떡하자는 거야. 나는 미호크가 사달을 내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어디인지 알려줘봤자 어차피 못 구할걸?” 마찰을 중재하기 위해 나서자 티치의 시선이 다시 미호크에게서 나로 옮겨왔다. 눈이 마주치자 히죽이며 웃는다. 반듯하게 난 건치 사이로 드문드문 ...
20화 네? 해적이요? (11) [Playing…]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바다 위였다. “?” 왜 벌써 바다지. 깜짝 놀라 벌떡 상체를 일으키자 그 반동으로 배가 출렁였다. 와 씨, 깜짝아. 막 잠에서 깨 비몽사몽인 정신으로 시계부터 확인했다. [6:00 오전] 아침 6시구나. 4시간밖에 못 잤네…. …4시간밖에 안 됐는데 벌써 바다라고? 다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흰 수염 해적...
21화 네? 해적이요? (12) [Playing…] 도저히 불안함을 떨칠 수 없어서 말 피리를 꺼냈다. 미호크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친구니까 당연히 믿고 있지. 하지만 사람은 만일이라는 게 있잖아. 셰인이 너무 깝쳐버린 나머지 셰/인이 되어버리면 어떡하지. 불현듯 미호크에게 시비를 걸다가 침몰 엔딩을 맞은 해적들의 말로가 떠올라 황급히 날쌩마를 불렀다. 그래도 미호크가 내 친구를 죽이지는 않았을...
22화 네? 해적이요? (13) [Playing…] 이 정도면 세계의 난제라고 해도 되는 거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세계 최강의 대검호라는 호칭을 단 인물이 어째서 해적이란 말인가. 심지어 정부가 공인까지 해준 합법해적이란다. 세계정부… 이대로도 괜찮은 거야? 무능함이랑은 결이 좀 다르지만 절대 제정신인 집단은 아닌 것 같은데. 게다가 정작 미호크 본인은 해적보다는 검사로서...
23화 봄봄봄 봄이 왔네요 (1) [Playing…] 진저 섬에서 굳이 베리 농사를 짓는 이유는 단순히 내가 베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효율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편이고, 일단 새콤달콤해서 맛있잖아. 씨앗을 새로 심을 필요 없이 다회 수확이 가능하다는 점도 좋다. 원래 계절 작물인 베리류는 계절이 지날 때마다 썩는 게 정상이지만, 진저 섬은 사시사철 따뜻한 열대 기후니 도중에 시들 일도 없다. 일부러...
24화 봄봄봄 봄이 왔네요 (2) [Playing…] 갈매기는 자신을 뉴스 쿠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뉴스 쿠가 뭔지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정답, 0명입니다! 심지어 한 명은 네가 꽥꽥거리며 설명하는 걸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든. 생경한 단어에 우리 셋이 말없이 눈을 굴리자 자칭 뉴스 쿠 갈매기가 몹시도 충격받은 얼굴로 소리쳤다. “꽤액?...
25화 봄봄봄 봄이 왔네요 (3) [Playing…] 봄의 축제 중 가장 좋아하는 축제를 뽑으라면 망설임 없이 달걀 축제라고 말할 수 있다. 봄의 축제라고 해봤자 달걀 축제랑 봄꽃 무도회가 전부지만, 마을 곳곳에 숨겨진 알록달록한 달걀을 찾는 건 즐겁거든. 보물찾기 같아서 재밌잖아. 달걀로 만든 음식도 맛있고, 봄의 첫 축제인 만큼 들뜨고 싱그러운 분위기가 가득한 것도 좋다. 유력한 우승 후보인 애비게...
26화 봄봄봄 봄이 왔네요 (4) [Playing…] “페니, 봄꽃 무도회 파트너 정했어?” “아뇨, 아직이요…. 캐피는요? 헤일리랑 함께 왔던데, 헤일리의 파트너로 참가하는 거 아니었나요?” “헤일리는 알렉스랑 하기로 했대. 파트너 안 정했으면 나랑 할래?” “좋아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옅은 홍조를 띠고 수줍게 답한 페니가 은은한 미소를 짓자, 그 옆에 서 있던 마루가 히죽히죽 웃으며 휘파람을 불...
27화 봄봄봄 봄이 왔네요 (5) [Playing…]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두우르가나 섬으로 통하는 오벨리스크가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면 이렇게 번거롭게 배를 타고 이동할 필요도 없겠지. 터치 한 번으로 빠르고 신속하게 순간이동이 가능한 오벨리스크가 있는데 한낱 교통수단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 너무 현대인 같은 말이었나? 하지만 한번 맛보면 그 편리함에 끊을 수가 없는걸. 그런 ...
28화 봄봄봄 봄이 왔네요 (6) [Playing…] 물론 스타듀밸리에도 달팽이는 있다. 민물에 통발을 설치했을 때 나오는 초록색 껍데기의 자그마한 달팽이. 빈센트 어린이가 사랑하는 선물이고, 거스가 사랑하는 에스카르고를 만들 수 있다. 그 외의 쓸모는… 일단 게임 내 분류상으로는 ‘생선’에 속해서 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정도? 그런데 미호크의 반려달팽이는, 음. 아무래도 내가 알던 달팽이와는 품종이...
29화 바나나 먹으면 나한테 반하나? (1) [Playing…] 미호크는 개인적인 흥미로 소집에 응하는 거라고 말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 흥미도 결국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내가 미스터 치랑 아는 사이가 아니었으면 미호크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을 테니 말이다. 일단은 본인이 그렇게 주장하니 알겠다고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좀 그렇지. 나 때문에 굳이 가지도 않던 회의에 참석하겠다는데, 가만히 손 놓고 앉아 잘 ...
30화 바나나 먹으면 나한테 반하나? (2) [Playing…] 솔직히 말해서, 미호크가 은근히 날 애 취급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긴 했다. 그런데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넘어간 건 그게 내게 익숙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스타듀밸리 주민들의 평균 연령이 몇인지 아는가? 노인분들이야 그렇다 쳐도, 다른 사람들도 내 또래의 자식이 있는 부모가 대부분이었다. 나를 어엿한 성인으로 취급하기보단 아들딸의 친구처럼 대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