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260810 자혜 어느 날 문득 이름을 바꾸기로 마음먹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2000자 산문을 쓰시오. 문 밖에 서 있는 윤숙자 여사를 첫눈에 알아보지 못한 것이 비단 S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십 년 만에 마주한 윤숙자 여사는 생뚱맞게도 외려 젊어져 있었다. 막 예순을 넘긴 나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분을 칠한 얼굴에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자혜야.” S의 손이 현관의 도어 체인 위에서 멈칫거렸다. S가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윤숙자 여사는 한 손에 ...
한 달 전 260802 얼룩 먼 훗날 인간의 신체 일부가 퇴화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발이 될 것이라고, 안지는 확신했다. 오늘날 인간에게 발은 쓸모없는 기관이었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두 발은 더 이상 목적지에 닿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다. 게다가 발은 몸에서 가장 쉽게 더러워지는 부위였다. 발냄새. 그것은 누구나 숨기고 싶어 하는 악취였다. 판촉팀장은 말했다. “이 세상에 손냄새 같은...
2달 전 260727 범고래꿈 아버지의 삼제를 치른 날, 어머니는 우리 집으로 새끼 범고래를 데려왔다. 건장한 인부 셋이 젖은 장화를 끌며 거실을 가로질렀다. 거실 한가운데에 금세 거대한 수조가 들어섰다. 수조 속에서 검은 등이 비스듬히 뒤집혔다. 파트리아. 어머니 수조를 쓰다듬었다. 너희 아버지가 돌보던 아이야.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부턴 네가 파트리아를 키워야 해. 낮잠을 자다...
2달 전 260725 메타몽은 바다로 간다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논인지 바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하얀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부산행 심야 무궁화호 열차에서 메타몽 인형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한참 울었다. 빨래 건조대에서 채 마르지도 않은 것을 그대로 집어왔더니 인형에 지겨운 라벤더 향이 물씬 배어 있었다. 무겁고 메스꺼운 라벤더 향이 숨을 타고 몸속 안쪽까지 가라앉았다. 모든 빨랫감에...
2달 전 260718 스토미웨더 1. 언니는 엄마를 닮지 않기 위해 평생을 애썼다. 하지만 그 노력은 언니를 누구보다 기괴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왜 지금, 하필 밴쿠버에 왔어. 지금 볼 거라곤 비 오는 하늘이나 비 올 것 같은 하늘밖에 없는데. 제인의 말에 영주는 잠시 고민했다. 짧은 영어 실력으론 영주 자신이 밴쿠버에 여행을 온 이유에 관해 설명할 수 없을 듯했다. 영주가 답하지 않자 ...
2달 전 버드스트라이크 어제는 개똥지빠귀더니, 오늘은 제비다. 이중창을 여는 순간, 데워진 공기를 타고 퀴퀴한 핏내가 코끝에 스몄다.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감색 몸뚱이에 벌써 파리떼가 바글바글했다. 외창 한가운데에 깃털과 살점이 눌어붙어 있고, 그 아래로 주욱 흘러내린 검붉은 한 줄이 창을 반으로 갈랐다. 이 집에 이사 온 지 이제 겨우 한 달이었다. 코를 막으며 헛구...
2달 전 260703 장면+문장 가족 문제와 전혀 관련 없는 사건으로 이루어진 장면 3개 1. 새벽 세 시가 넘어가자 편의점 안은 냉장고 윙 돌아가는 소리만 울렸다. 계산대에 엎드려 스마트폰을 만지던 아르바이트생은 갑자기 삑. 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계산대 위에는 아무 물건도 없었다. 오류인가 싶어 화면을 보니 결제 금액이 잠깐 찍혔다가 사라졌다. 그는 바코드 스캐너를 들어 흔들어 보았...
3달 전 260626 녹색 기린 녹색 기린 현진을 재우고 새벽 두 시 쯤이었다. 어김없이 보일러실 안쪽에서 쾅 하는 소리가 났다. 소파에 기대 앉아 꾸벅꾸벅 졸던 윤주가 천천히 눈을 떴다. 또 시작이군. 윤주는 협탁 위 묵주를 움켜쥐었다. 한 달 전에는 절을 찾아갔고, 일주일 전에는 점집을 찾아갔다.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묵주를 한 알씩 손바닥...
3달 전 260604 해운대에는 가지 않았다 다음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네 마리의 말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 말의 입장을 중심으로 의인화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쓰시오. 3인칭 시점으로 쓰고 제목을 붙이시오. 맞춤법과 원고지 사용법에 따라 3000자 이내로 쓰시오. 답안지에 신원을 알 수 있는 표시가 있을 경우 무효 처리함. 해운대에는 가지 않았다 카드로 봤을 때는 올해도 낙방이었다. 거꾸로 뒤집힌 카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