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달 전 지배의 궤적 - 기원 (Origin) 차신우-1 여름은 불쾌했다. 하복 셔츠에 들러붙는 습기, 매미들의 발작적인 울음소리, 그리고 덜 자란 수컷들에게서 풍기는 시큼하고 역겨운 호르몬 냄새. 버려진 체육관 뒷골목. 콘크리트 벽에 기대어 혀끝으로 껌을 질겅거리며, 그 조잡하고 얄팍한 삼류 야동을 관망하고 있었다. 동네 양아치 새끼 둘이서 교복이 반쯤 찢긴 동급생 하나를 구석에 몰아넣고 낄낄대고 있었다. 폭력...
5달 전 헛웃음 익명의 센티넬의 이야기 20XX년 서울. 테헤란로의 빌딩 숲 사이, 더럽게 비싸기만한 프랜차이즈 커피의 탄 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에 하늘에 뚫린 시궁창에서 게이트가 터졌다. K-2 소총이나 수십억짜리 미사일 따위로는 기스조차 내지 못할 두꺼운 외피. 거대한 사마귀와 두꺼비를 교배해 놓은 듯한 흉측한 B급 마물의 명치에, 나는 센티넬의 마력이 실린 티타늄 블레이드를 망설임 없이 쑤...
5달 전 유령의 해부학 - 0.3초의 영원 신가혁-1 18살의 가을. 섬유유연제 냄새와 편의점 비닐봉지의 바스락거리는 마찰음. 여동생 가희의 교복 치마가 팔랑거릴 때마다, 여중생 특유의 실없는 수다들이 골목길의 낡은 적벽돌 사이로 흩어졌다. "오빠, 편의점 가자~ 나 오늘 수학 학원에서 진짜 짜증 나는 일이 있었는데…." 내 팔짱을 껴오는 가희의 손바닥엔 미지근한 체온이 배어 있었다. 과묵한 오빠와 수다스러운...
5달 전 적색 거성의 우울 최이안 싸구려 피비린내와 아스팔트 분진이 엉겨 붙은 폐공장. 녹슨 철골 구조물 사이로, 폐결핵 환자의 가래 끓는 소리 같은 환풍기 소음만이 불규칙하게 울렸다. 발작하듯 점멸하는 형광등 불빛 아래, 그 잿빛 공간의 한가운데 최이안이 서 있었다. 그의 발밑에는 방금 전까지 살아 숨 쉬며 인간의 내장을 탐하던 이형의 마물들이, 이제는 공업용 믹서기에 갈린 고깃덩어리가 ...
5달 전 오물의 스크린 오윤찬 믹스 커피의 텁텁한 단내와 복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릿한 오존 냄새. P.E.N 경기 남부 지부 운영지원팀의 공기는 언제나 싸구려 수면제처럼 탁하고 무거웠다. 오윤찬 대리는 엑셀 화면에 코를 박은 채, A4 용지 청구서와 비품 영수증을 분류하고 있었다. 다려 입은 와이셔츠, 깔끔한 흑발, 싹싹하고 유능한 대리님의 완벽한 위장. 하지만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
5달 전 사이렌의 엔딩 크레딧 은세현 상암동 공개홀 대기실. 헤어스프레이 냄새와 협찬받은 에너지 드링크의 단내가 역겹게 뒤섞여 있었다. 방음벽 너머로는 세상을 다 부술 듯한 소녀들의 함성이 진동했다. '은세현! 은세현!' 그 피사체인 3년 차 솔로 아이돌 은세현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금발을 응시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세팅된 머리. 환하게 웃는 아이돌의 무해한 가면. 하지만 조명이 닿은 머리카락...
5달 전 핑크빛 부조리 김현우 아스팔트가 구토를 유발할 듯한 복사열을 토해내는 한낮의 번화가. 배기가스와 싸구려 향수 냄새가 진득하게 엉겨 붙은 인파 한가운데, 190cm의 멀대 같은 피사체가 시야를 거칠게 찢고 서 있었다. 대가리에 불량식품 솜사탕을 통째로 쏟아부은 듯한 작위적인 핑크색 머리카락. 김현우. P.E.N 경기 북부 지부 소속, 스무 살의 B급 가이드. 놈은 방금 전까지 P...
5달 전 보이지 않는 결 연시우 강원도 고성의 햇살은 폭력적일 정도로 평화롭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짠내, 옆집 박 할머니의 무릎 연골이 삐걱거리는 미세한 마찰음, 그리고 텃밭에서 허무하게 말라 죽어가는 상추의 비릿한 엽록소 냄새. "어… 또 죽었네. 물을 너무 많이 줬나." 브라운색 가죽 에이프런을 두른 연시우가 시들해진 상추 잎을 툭툭 건드리며 중얼거렸다. 밀크 브라운색 리프컷 사이로 ...
5달 전 지배의 궤적 차신우 P.E.N 지하 3층 제2 특별 제압실. 경고등의 붉은 불빛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점멸하고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고막을 찢을 듯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대피 명령이 앵무새처럼 반복됐다. "크아아아악!" 강화유리 너머 제압실 한가운데서, B급 화염계 센티넬 하나가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과부하 3단계. 이성은 이미 증발했고, 통제력을 잃은 불길이 그의 전신...
5달 전 유령의 해부학 신가혁 엘리베이터의 메탈 도어에 비친 남자는 완벽했다. 먼지 하나 없는 P.E.N의 네이비색 제복, 흐트러짐 없는 시스루 댄디 컷, 그리고 입가에 걸린 정중하고 무미건조한 미소. 방금 전 B급 게이트에서 갓 부화한 아라크네 변종 일곱 마리를 도축하고 온 인간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깔끔한 몰골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신 헌터님. 이번에도 단독으로 처리하셨다고 들...
5달 전 Portal Extermination Network P.E.N 토가 쏠릴 정도로 쾌청한 오후였다. 편의점 앞 벤치에서 아이스크림을 핥는 꼬마들, 모니터 불빛에 안구가 구워지고 있는 넥타이 부대. 아무도 몰랐다. 이 빌어먹게 지루한 일상이 1초 뒤에 끝장날 거라는 걸. 사건의 발단은 하늘에 뚫린 구멍이었다. 콜타르처럼 검고 끈적거려 보이는 그것은, 누군가 파란 캔버스를 공업용 커터칼로 거칠게 그어버린 것 같은 비현실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