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36 36장 시아 방 쪽 문이 살짝 열렸다. 졸린 얼굴의 시아가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가 거실을 보고 멈췄다. “엄마…?” 리엘의 시선이 바로 돌아갔다. “시아야.” 아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낮아졌다. 시아는 천천히 방에서 걸어 나왔다. 아직 잠이 덜 깬 눈으로 거실을 한 번 훑다가 리엘 옆에 서 있는 세온에게 시선이 멈췄다. “…아저씨.” 낯설지 않...
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35 거실에 내려앉은 침묵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송강의 말이 끝난 뒤에도 아무도 바로 움직이지 못했다. 세온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송강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 리엘에게 닿았다. 리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손에 쥔 약봉투가 조금 구겨져 있었다. 세온이 낮게 말했다. “…시아.” 리엘의 눈이 미묘...
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34 송강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관 앞에 서 있는 채로 거실 안을 바라봤고, 세온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두 남자의 눈이 조용히 부딪히자 공기가 아주 천천히 가라앉았다. 리엘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강아.” 송강의 시선이 리엘에게 돌아왔다. 리엘이 낮게 말했다. “약은… 고마워.” 송강이 들고 있던 봉투를 천천히 내밀었다. 리엘이 받아 들었다. ...
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33 송강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관 앞에 서 있는 채로 거실 안을 바라봤다. 세온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 조용한 긴장이 천천히 깔렸다. 리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송강.” 송강의 시선이 다시 리엘에게 돌아왔다. 리엘이 낮게 말했다. “약은… 고마워.” 송강이 들고 있던 봉투를 천천히 내밀었다. 리엘이 받아 들었다. 손이 스치듯 가까워...
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32 세온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리엘의 말이 끝난 뒤에도 거실 공기는 쉽게 움직이지 못한 채 가라앉아 있었다. 세온의 시선이 잠깐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왔다. “…그래서.” 목소리는 낮았지만 조금 전보다 훨씬 단단했다. “그래서 그냥 갔어.” 리엘의 눈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세온이 한 발 다가왔다. “나한테 말 한마디도 안 하고.” 리엘이 바로...
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31 세온의 말이 떨어지고도 거실 안은 한동안 그대로였다. 마치 방금 오간 말들이 아직 공기 속에 남아 있는 것처럼, 아무도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리엘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세온을 더 보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숨을 한 번 고르고 몸을 돌렸다. “가.” 조용히 말했다. 세온이 움직이지 않았다. 리엘이 다시 말했다. “…가라고.” 이번에는 조금 더 단단한...
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30 “…아빠.” 그 한마디가 떨어지자 거실 공기가 아주 잠깐 멎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리엘의 눈이 천천히 흔들렸다. 방금 들은 말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처럼, 몇 초쯤 늦게 숨이 따라왔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지금 와서?”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 눌려 있던 감정은 가볍지 않았다. 세온의 눈이 미묘하게 깊어졌다. 리엘이 피식 웃었다. 웃음 같았지만 ...
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29 시아는 라면을 반도 못 먹었다. “배불러…” 눈을 비비며 의자에서 내려왔다. 리엘이 바로 일어났다. “졸려?” 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리엘이 아이 손을 잡았다. “방에 가자.” 시아는 순순히 따라가다가 문 앞에서 한 번 뒤돌아봤다. 세온을 향해서였다. “…아저씨.” “응.” “아저씨 집 안 가?” 세온이 잠깐 멈췄다.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28 부엌에서 물 끓는 소리가 작게 올라왔다. 리엘은 냄비 앞에 서 있었다. 젓가락으로 라면을 천천히 풀어 주고 있었다. 손이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 거실에서는 시아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아저씨.” “응.” “아저씨 키 진짜 크다.” 세온이 소파 옆에 서 있다가 아이를 내려다봤다. “…그래?” 시아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우리 유치원에서 제일 큰 선생님...
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27 도윤이 나간 뒤에도 현관 쪽은 한동안 조용했다. 문이 닫힌 자리만 괜히 더 고요했다. 세온은 잠깐 그쪽을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거실. 리엘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시아. 아이의 손이 리엘 옷자락을 꼭 잡고 있었다. 세온의 시선이 그 작은 손에서 잠깐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올라갔다. 리엘과 눈이 마주쳤다. 아까보다 더 가까운 거리였다. 하지...
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26 도윤의 말이 끝나고도 거실 안은 한동안 조용했다. 아무도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세온은 잠깐 도윤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도윤은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시아를 한 번 내려다봤다. 아이도 가만히 그를 보고 있었다. 잠깐 서로 눈이 마주쳤다. 도윤의 입가가 아주 조금 풀렸다. “늦었네.”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리고 리엘을 봤...
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25 거실이 조용해졌다. 세온의 말이 아직 공기 속에 남아 있었다. “…내 애 앞에서.” 짧게 숨을 내쉰 뒤, “그 더러운 입으로 지껄이지 마.”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서린의 입가에 걸려 있던 웃음이 천천히 사라졌다. 잠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세온은 이미 시선을 거둔 뒤였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주방 쪽. 리엘이 서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
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24 거실 안이 조용했다.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민 시아는 가만히 세온을 보고 있었다. “…아저씨?” 작은 목소리였다. 세온의 시선이 아이에게 향했다. 아까까지 얼어붙어 있던 눈이 아주 미묘하게 풀렸다. “…괜찮아.” 낮게 말했다. “시아야.” 아이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 순간이었다. 한서린의 눈이 천천히 좁아졌다. 세온이 아이 이름을 부르는 방식. 망설...
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23 비가 그친 다음 날 오후였다. 골목은 조용했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하나둘 집 안으로 사라지는 시간. 리엘은 창문을 조금 열어 두었다. 바람이 들어오며 얇은 커튼이 천천히 흔들렸다. 부엌에서는 냄비에 물이 끓고 있었다. 거실 바닥에 앉은 시아는 색연필을 잔뜩 늘어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사각사각. 종이 긁히는 소리가 조용히 이어졌다. “엄마.” ...
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22 다음 날 아침이었다. 대한그룹 본관. 엘리베이터 문이 조용히 열렸다. 권세온은 아무 말 없이 복도를 걸어갔다. 직원들이 지나가며 고개를 숙였다. “부사장님.” 세온은 짧게 고개만 끄덕였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눈이 더 깊어졌다고 해야 할까. 어젯밤. 작은 식탁. 라면 그릇. 그리고 젓가락을 서툴게 쥐고 ...
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21 “아저씨!” 시아가 문을 더 활짝 열었다. 잠옷 소매가 조금 길어서 손이 반쯤 가려져 있었다. 세온은 그 모습을 잠깐 내려다봤다.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진짜 안 갔네!” 세온이 아주 작게 웃었다. “…응.” 시아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리엘이 말했다. “시아, 늦었어.” 아이는 고개를 돌렸다. “나 배고파.” 리엘이 잠깐 멈췄다...
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20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비는 낮보다 더 굵어져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빗줄기가 길게 떨어지고 있었다. 리엘의 집 앞.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세온이었다. 차 문을 닫고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비가 어깨를 적시고 있었지만 우산도 펴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늘 하루가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병원. 작은 손. “손 잡아도 돼?” 그리고— “…내 애...
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19 진료실 안이 조용해졌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만 잔잔하게 들리고 있었다. “…내 애야?” 세온의 목소리는 낮았다. 놀란 것도, 화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조용했다. 그래서 더 무거웠다. 리엘의 손이 가방 끈을 꽉 쥐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시아는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를 전혀 모른 채 침대 위에서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엄마.” 아이가 불렀다....
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18 며칠 뒤. 아침부터 하늘이 잔뜩 흐려 있었다. 점심이 지나자 비가 조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GNA 픽처스 건물 앞.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빠르게 지나갔다. 그때— “엄마 뛰어!” 작은 목소리가 비 사이로 튀어나왔다. 시아였다. 노란 우비를 입은 아이가 비를 피하듯 건물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리엘이 뒤에서 말했다. “시아, 미끄러워!” 하지만 아이는 신이...
6달 전 내가 떠난 뒤, 그가 무너졌다. 17 며칠 뒤. GNA 픽처스 건물 앞 카페.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라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세온은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앞에 놓인 커피는 거의 그대로였다. 노트북 화면에는 회의 자료가 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한 줄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 전 복도에서 본 아이가 자꾸 떠올랐다. 동그란 눈. 밝게 웃던 얼굴. “…아저씨!” 그 목소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