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달 전 새해를 맞이하며 새해에 부는 바람은 전혀 따뜻하지 않았다. 고요하고 적막한 붉은 눈동자는 어슴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라니아는 여전히 그 어떤 것도 잊지 못한 채였다. 죽음은 무거웠고, 상실은 애달팠으며 고통은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표정 없는 얼굴에 어설픈 미소를 한 번 띄운 채로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습관적으로 기척을 지우고 발걸음 소...
9달 전 눈물의 향기가 나는 세계 세라니아는 죽은 자들의 세계를 걷는다. 온갖 빛무리가 휩싸이고, 그것들이 모두 별이 되는 세계 속을 천천히 걷는다. 하나의 생명은 하나의 별이 되고, 별이 된 이들은 다시 하나의 생명이 된다. 세라니아는 적막한 눈동자로 앞을 본다. 죽은 동료들이 보인다. 가장 그리운, 희고 짙푸른 빛깔을 가진 채로. 설원의 눈물이 섞인, 희고 푸른 머리카락이 길게 휘날린다...
9달 전 도시의 시스템 소녀가 처음 눈뜬 곳은 깊은 수조였다. 수많은 금속판 사이에서 호흡기를 단 채였다. 소녀는 의식을 가진 순간부터 모든 정보를 알 수 있었고, 어떻게, 그리고 왜 만들어졌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이건 비밀리에 실행됐던 프로젝트였다. 인공 생명체와 데이터의 결합. 그리고 그것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생체 컴퓨터는 거대한 도시를 보호하게 되는 것이다. 영원히 변질...
9달 전 영원함에 관해 리운 님, 영원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영원함은 없다고들 하잖아요. 글을 짓는 사람에게는 그 말이 어떻게 들릴지 궁금해서요. 월하미인은 스쳐 지나가듯 들은 질문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었다. 첫 책을 냈을 때, 아직은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에서 못 벗어났던 19살에 받았던 질문이었다. 그립고 서글픈 것이 많아 그리운을 필명으로 삼았던 월하미인은 그 질...
9달 전 기나긴 그리움 이름 없는 기사는 평생을 떠돈다. 평생이 더 이상 평생이 아니게 될 때까지 세상을 걷는다. 몸에 단단히 두른 갑주가 빛을 잃은 일은 없었고, 손에 든 맑은 숲의 빛깔을 담은 검은 언제나 부정한 것을 갈랐다. 악에 대항할 힘을. 그리고 선한 것을 지킬 힘을. 의지를. 수없이 반복한 말은 죽은 자들에게 바치는 기도였다. 불사의 저주를 가진 채 오랜 세월을 살아...
9달 전 어버이날 편지 반화가 어느 정도 큰 이후에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일반인은 이능력을 가진 사람들에 비해 약하다는 것이다. 이능력, 특히 반화가 가진 힘은 무언가를 상처입히기에 최적화된 능력이었다. 상처 입는 것이 두려운 자에게 상처입히기에 좋은 능력이 있다니. 반화는 이것이 꼭 아주 나쁜 농담 같다고 느꼈다. 그럴 때면 보호자인 한주가 그런 마음을 어떻게 알아채는지 곁에 ...
9달 전 스물의 겨울 페리도트는 손을 더듬거리며 바닥을 짚는다. 차가운 눈의 감촉이 신체의 말단 부위부터 차갑게 만들었다. 푸르게 물든 손끝과 발끝에 더 이상 어떤 감각도 느껴지지 않을 때, 페리도트는 온갖 악몽과 추억과 전생의 기억들이 뒤섞인 눈동자로 눈밭을 바라본다. 몸을 기어이 일으킨다. 어린아이가 보였다. 소중하게 간직하던 목도리를 풀어 아이에게 감아 주었다. 미안해요,...
9달 전 신화의 끝 일이 끝나면 그 가게에서 신이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이 신을 동경하던 시대는 지났다. 최초의 사랑은 의미가 없었고, 결국 신은 역사의 뒷전에 놓인 신화 속에서 저물어간다. 신들의 말로는 몇 가지로 나뉘었다. 사랑하던 것들이 다 죽어 없어져 미치거나, 여전히 사랑한다는 이유로 구제와 시련을 내리거나, 모든 의미를 잃은 채로 유령처럼 떠돌거나. 신화가 저물어가...
9달 전 신화의 편린 일이 끝나면 그 가게에서 신이라는 초월적 종족은 제멋대로에 종잡을 수 없고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전지하거나 전능하며, 세계 하나를 만들거나 부술 수도 있다. 그들은 대체로 자비를 모르며, 인류를 구제하거나 시련을 내릴 수도 있다. 도르네도는 오랜 시간을 살아오면서 많은 존재를 만났다. 그중에는 신도 있었다. 멀고 높은 곳에 있는 지고한 자들. 신과 ...
9달 전 도시의 그림자 일이 끝나면 그 가게에서 부슬비가 굴러떨어지는 시간이었다. 담은 가게 아래에 서서 회색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입에서 내뱉는 한숨에 김이 서릴 것만 같은 차가운 비가 하염없이 쏟아진다. 원래 같았다면 지금 담은 도르네도의 거점에 있어야 했다. 특별한 일정이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잠시 나온 차에 비가 쏟아졌고, 우산도 없었다. 비 좀 맞고 ...
9달 전 우화하지 못한 나비 일이 끝나면 그 가게에서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더욱 그랬다. 일에 열중하면서 다른 것을 병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그의 사랑하는 연인을 보면서였다. 누군가의 안전을 위해 그토록 열을 올리면서도 누군가를 희생시킨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한 명의 희...
9달 전 껍데기 안의 신 일이 끝나면 그 가게에서 드림주 프로필 옛 시절. 우유와 꿀이 흐르고, 웃음이 넘쳐나며, 모두가 기쁨에 겨워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춘다. 신은 인간들을 사랑하고 인간들은 신을 사랑한다. 차별과 혐오가 없던 시대의 신들은 모두 인간과 손을 맞잡고 춤을 추었다. 먼 훗날 인류가 이르기를, 이 눈 부신 빛의 나날을 신화시대라고 불렀다. 아담, 담. 신화시대의 신. 옛 시절부터 오랜 시간을 사랑함으로 살...
9달 전 무제 일이 끝나면 그 가게에서- 도르네도 3일차 날조 아담은 도르네도가 알려준 숫자를 잠시 곱씹으면서 창밖을 보고 있었다. 바람도, 빗방울도 없는, 차갑고 조용한 도시의 풍경은 담에게 미약한 안정감을 쥐여 주었다. 단순한 숫자라고 하기에는 좌표값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처음 듣는 숫자인 만큼, 아마도 아주 중요한 것을 숨겨둔 모양이지. 군사기밀 시설 같은 것 말이...
9달 전 전투 (1) 치안유지 부대는 경찰이나 군대와 비슷한 기관이다. 그들은 사소한 위협이나 사기업의 횡포를 막고, 개인의 폭력을 억제한다. 나아가 길거리에 만연한 온갖 더러운 술수까지 미연에 방지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악은 선이 없는 곳에 자리 잡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언가를 제어할 힘이 없는 곳에 있었다. 스모크는 그것을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였다. 폭력을 억제하는...
8달 전 전투 (2) 도시의 외곽이 시끄러웠다. 담은 잠시 큰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푸르고 붉은 눈동자에 흰색 이채가 서렸다. 역겨운 괴수의 향기…. 워커스 하이에 가만히 앉아 구경하던 담은 술잔에 담긴 것을 마저 삼키며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 □□. 가게 안에 아무도 없었기에 망설임 없이 부른 이름이었다. 점장은 담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다가 얕은 한숨을 내쉰다. ...
8달 전 Ending credits ... and you Hello Charlotte 2차 창작 샤를로테 윌트샤이어는 자신이 사랑하던 세상을 바라본다. 너무나도 사랑했던,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는 세계. 그토록 크게 사랑해서 부서질 것처럼 아팠던 세계. 심장의 박동은 여전히 거셌고, 거센소리에 맞춰 파도가 들어온다. 희게 드러난 발에 파도가 닿아 흰 거품으로 변했다. 문득 아래를 내려다본다. 뼛속까지 차가워지는 짜...
8달 전 파티 초대장을 반납하러 삶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언젠가 채널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부메랑처럼 날아와 발치에 떨어진다. 이 삶을 견뎌내는 내내 이런 식이었다. 단 한 번도 손에 제대로 된 결과가 들린 적이 없었다. 애초에 해답이 없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채널은 어느 정도 큰 다음부터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해답이 없는 질문...
8달 전 Hydrangea 수국(水菊): 냉담과 무정 hy·dran·gea. 하이드렌자. 악착같은 여자, 괴물 같은 여자, 천의 얼굴을 가진 여자, 슬픈 여자. 부대 내에선 이름보다 더 잘 알려진 별명이다. 부대 내부에서 그를 잘 아는 사람 자체가 드물었지만. 이제는 그의 본명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 이름은 먼 과거에 서류에 붙어있던 쓸모없는 알파벳의 나열일 뿐이었다. 레인(rain)이라는 코드명이 ...
8달 전 평온함의 끝 레인은 거친 숨을 내쉬다가 삼켰다. 우울한 도시의 뒷골목에는 적요한 어둠이 깔려 있었다. 골목길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그런 피비린내는 골목길에서는 흔한 향기였다. 상류층 사람들이 뿌리는 향수는 그 어떤 피비린내도 이기지 못한다. 손에 든 칼을 떨어트린다. 손끝에 있을 지문은 먼 옛적에 훼손한 채였다. 그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