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달 전 무취 上 12,000 / 260504 | 무형의 감정 대신 무취의 기억 2046년의 도쿄는 20년 전의 도쿄와 외형적으로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는 여전히 분주했고 신주쿠의 고층 빌딩들은 여전히 빛을 발했다. 달라진 건 오직 그 빛의 의미뿐이다. 야간에 특정한 파장의 빛을 발산하는 간판들은 도쿄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기억 거래소. 정식 명칭은 뉴로메모리 익스체인지였으나 사람들은 회사 이름을 따서 그...
4달 전 서약 下 16,000 / 260430 | 어느 때건 존재하는 영원은 불가해에 가깝다는 것 인간의 시간이 선형적인 진보를 꿈꾸며 분주하게 흐를 때 불사의 시간은 순환하는 고통 속에서 정지된 영원을 탐닉한다. 하츠가노 유우토는 자신의 신체가 발산하는 열기가 차가운 다다미의 냉기와 부딪히며 소멸하는 과정을 감각의 전부로 받아내고 있었다. 아사쿠라 히사에의 손끝이 하츠가노 유우토의 쇄골 위를 천천히 미끄러진다. 손끝이 하츠가노 유우토의 피부에 닿는 순...
4달 전 서약 上 15,000 / 260430 | 형벌적 영원은 지속되는가? 가을에 도쿄는 한 차례 무너졌다. 진재震災라고 사람들이 줄여 부르는 그 사건이 이 도시의 살갗 어딘가를 영구히 변형시켜 버린 뒤로 거리는 두 겹의 시간을 동시에 호흡하게 되었다. 새로 깔린 콘크리트의 직선과 그 아래에서 아직도 가루로 남아 있는 옛 목재의 잔해 위로 비단처럼 깔린 전등의 노란 불빛이 흘러내리던 시절. 사람들은 무너진 것 위에 새로 무엇을 짓...
4달 전 시차 15,000 / 260426 | 우리는 우리의 시차로 도망칠 수밖에 24시간 내내 소멸하지 않는 인공의 백열광 아래에서 시간은 계절의 변화나 태양의 남중고도와 무관하게 고정된 조도로 내부를 잠식하고 있다. 편의점이라는 공간은 도시가 배설해낸 무수한 파편들―새벽의 소음과 함께 밀려드는 취객의 흐릿한 안색, 점심시간의 협소한 틈을 타 생존을 위한 열량을 선택하는 직장인들의 소진된 어깨, 그리고 찰나의 달콤함 앞에서 고뇌를 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