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받은 물망초에 관심 주는 이야기 2026.06.12 💚 전당으로 돌아온 아낙사를 반기는 건 거목의 풀 내음뿐만이 아니었다. 늘 그렇듯 난잡하기 그지없는 연구실 앞 사정도 함께했다. 베네라티오 학파에서 보낸 것으로 보이는 수십 통의 항의 서신, 그리고 마른 낙엽이 어지럽게 엉켜 문 앞을 가로막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을 향한 거친 환영에 익숙했다. 놀란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빗자루를 들고 쓱쓱, 돌바...
스승의 날에 물망초 선물하는 이야기 2026.05.15 💙 스승의 은혜는 아퀼라의 영역처럼 높고 존경 뒤에 숨은 연정은 파구사의 축복만큼이나 깊다. 파이논의 마음에 뿌리내린 씨앗은 감사하다는 말로 표현하기에 부족했다. 이보다 더 큰 그릇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다 채우다 못해 차고 넘칠 정도로 무거운 이 감정을 어떻게 전하면 좋을까. 틈틈이 기회를 엿보던 그는 환희의 달 열다섯째 날, 작은 선물과 함께 깨달음의 나무...
소원나무 2026.04.26 🌸 깨달음의 나무 정원 한가운데 우뚝 솟은 성체에는 종종 희한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거목의 변덕이라고 불렀다. 오늘은 갓 뻗어낸 나뭇가지 위에 앰포리어스의 거룩한 도시와 북반구 차가운 도시 사이의 이름 없는 산에서만 볼 수 있다는 꽃을 피워내는 것으로 자신의 권능을 드러냈다. 이 식물을 나무 정원에서 보게 되리라고는 누구도 알지 못했으니,...
경작의 달 첫 번째 날 2026.04.01 🤡 깨달음의 나무 정원의 나뭇잎은 때때로 시계 혹은 나침반이 된다. 오로닉스의 장막이 걷히지 않은 긴 밤의 달 말일, 태초의 빛을 대신하는 만월이 세르세스 아래 그림자를 드리웠다. 한 티탄의 푸릇한 생각은 어둠 속에서 색을 잃고 형체만을 드러낸 채였다. 우애의 관으로 향하는 길 초입에 선 파이논은 동쪽에서 남쪽으로 기우는 그림자를 보며 주먹을 쥐었다. 바야흐로...
핸드셋 2025.08.18 🛫 현대AU 기장CTO Number Zero Clear와 배경 공유 평행을 달린다. 아퀼라의 하늘과 지오리오스의 대지에 그어진 한 쌍의 긴 줄. 그 위에서 멀어지고 좁혀지기를 반복했다. 그들은 같은 시간 속에서 각자의 풍경을 담으며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태양이 땅에 머물고 나무가 걸음을 떼는 찰나의 순간을. “오랜만이네.” “선생님!” 캐주얼한 차림의 아낙사가 문 너머에서 파이...
필로우 2025.08.11 🌳 작금의 밤은 8월 그 자체였다. 영야의 열기 속 파이논을 타고 흐른 방울 하나가 턱끝에서 툭, 아낙사의 뺨에 부딪혀 흩어졌다. 수확의 달을 맞은 엘리사이 에데스의 포근함을 닮아 이곳은 퍽 은밀하고 뜨거웠다. 숨을 곳이 한가득인 샛노란 풍경은 누군가의 비밀 장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깨달음의 나무 정원 속 탐구 정원, 누구도 찾지 않는 아낙사의 연구실 또한 그...
단흙 사건 2026.02.14 🍫 휴게 공간에서 출발한 파이논은 케팔 광장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아주 평온한 상태였다. 목적지와의 거리를 좁힐수록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하더니 정신을 차렸을 때는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애매한 박자로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오크마의 한 공방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을 정돈한 그는 최종 목표까지 천천히 움직였다. 옹기종기 모인 드로마스 성체들 사이에는 몸...
어느 행성의 기연의 달에는 2025.12.25 🎄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파이논은 아낙사부터 떠올렸다. 어디 매달려있다더라, 현인 의회에서 또 명언을 날렸다더라, 연구실에서 들리는 굉음 때문에 전담 관리부가 편성되고 전수조사에 나섰다더라, 탐구 정원에서 지진이 관측되었는데 지질학적 요인과는 관련이 없다더라. 행적을 가리키는 것 중 어느 하나 평범한 것이 없는 그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빼빼로데이 홈 데이트 2025.11.11 🎁 현대AU 기장CTO 이착륙만큼이나 요란한 등장이다. 엘리사이 항공의 우수한 기장은 굴러오는 건지 달려오는 건지 모를 부딪침을 쿵쿵, 덜컹덜컹 내며 다가왔다. 입이 닳도록 자랑하던 '베스트 드라이버'라는 칭호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스크래치 하나 없는 구두 굽이 복도를 가로지르는 소리도 그랬다. 무엇 하나 잠잠하지 못한 그의 등장에 집주인은 열심히 두드리던 게임패드를 내려놓았다....
인형사세요 2025.10.23 🧸 3.7 업데이트 전 날조 “어쩌다 선택받은 것뿐이야.”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한다고 통하기나 할까. 아낙사의 말에 파이논이 고민에 잠겼다. 대단한 일이죠. 아무나 못 하잖아요── 이 말을 건네기 전, 제자는 스승으로부터 돌아올 답을 예상해야 했다. “불씨 계승은 원한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야. 네 앞에 있는 선생이 바로 그 예지. 듣기론 불을 쫓는 여정에 반대했던 적이 33,...
Q. 파낙 중 '라면먹고 갈래?' 멘트를 치는 쪽은? 2025.09.23 🍜 현대AU 파이낙사 기표소 연성 초가을의 귀뚜라미는 밤을 고요히 두지 않는다. 하루를 꼬박 함께한 연인도 각자의 길로 향해야 할 때를 아는 시각. 그들 사이에도 무언의 요란함이 오갔다. 운전석의 아낙사가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밟았다. 듬성듬성 자리 잡은 가로등이 어두운 골목을 겨우 밝혔다. 그곳에 선 세단 한 대가 쨍한 전조등으로 존재감을 뽐냈다. 알파벳 D에 있던 기어가 P로 옮겨가자, ...
은밀한 아침 2025.09.06 👞 현대AU 공훈#3 새벽부터 노크라니. 경우 없는 사건은 자신을 예고하는 법이 없었다.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 비가 창문을 미친 듯이 두드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낙사는 턱끝까지 끌어올린 이불 속에서 불청객의 인사를 외면했다. 일분일초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 알람이 울릴 때까지 눈 뜨지 않을 생각이었다. 마른 품에 안긴 남자도 이하동문. 그의 부드러운 잠옷에 제 볼을 비볐...
늦여름 2025.08.29 🍺 현대AU 공훈#2 아낙사는 해가 지기 전에 셔터를 내린 적이 없었다. 무성하고 차가운 빌딩 숲 사이에서 꿋꿋이 밤을 밝히는 그의 보금자리는 도시의 등대를 자처했다. 그러나 오늘은 예외다. 그는 처음으로 이른 퇴근을 꿈꿨다. 눈으로 내부를 한 바퀴 훑었다. 당장 손길이 필요하거나 시선을 끄는 곳은 없었다. 식기를 정리하고 커다란 창끝에 둥글게 말린 블라인드를 내렸다. 마지막으...
여름 2025.07.30 ☀️ 현대AU 공훈#1 여름이 싫다. 텁텁한 공기를 뚫고 도착한 공간에서 아낙사는 가장 먼저 리모컨을 들었다. 적정 온도 최솟값, 회색 디스플레이 위로 당연하게 맞춰진 숫자가 떠올랐다. 천장에 붙은 하얀 날개 너머에서 시원한 기운이 금세 쏟아졌다. 손에 든 것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적당하게 푹신한 의자에 기대 숨을 골랐다. 하아. 한껏 내뱉은 것이 허공에 먹힐 때 그는 지금부...
시시콜콜 2025.07.16 🍚 아침 끝자락에 그림자가 서 있다. 그제야 느지막이 눈을 뜬 남자는 익숙한 듯 손을 뻗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선생님! 전 방금 마모리얼 음식점에서 아침 먹었어요. 오크마의 친절한 시민이 알려줬는데, 명석시에 먹는 아침을 브런치라고 한대요. 꼭 챙겨 드세요! 파이논의 다정함은 매일 같은 시간에 문을 두드렸다. 아침 알람이 울리기 3분 전. 잠을 방해하고 싶지...
놀빛 정원의 어느 화단 2025.07.01 🌾 깨달음의 나무 정원을 떠나 오크마로 거처를 옮긴 놀빛 정원은 거룩한 도시에 터를 잡았다. 기연의 달, 은밀하게 이곳을 찾은 누스페르마타 학파의 아낙사고라스는 작은 주머니를 건넸다. “이건 뭔가요?” “씨앗. 오랜 지인에게서 받은 건데 고향에서 자라는 풀이라더군. 나무 정원은 빛이 마땅치 않으니 네 화원에 심어줬으면 해.” 좀처럼 부탁하는 일이 없는 스승의 ...
둘만 아는 이야기 2025.05.29 📚 내쓰대는 최고의 동인 참고자료 “파이논.” 따라붙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낙사의 호명이 끝나기도 전에 답하던 남자가 오늘은 온데간데없었다. 학자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결석한 학생은 자연스레 투명 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그의 마음 한편에 걱정이 피어오른 것이다. 그렇다고 굳이 찾아 나설 필요는 없었다. 그는 거룩한 도시에서 보낸 학생이니, 이 수업이 끝...